외국계 서비스회사의 신입사원 김 모(28)씨는 얼마 전 P2P(Peer to Peer, 개인간) 대출업체인 8퍼센트에서 연리 9%에 1000만원을 빌렸다. 학창시절 저축은행에서 빌렸던 연리 20%대의 학자금 대출(2000만원)을 갚기 위해서였다. 김 씨가 P2P 대출을 찾은 건 개인신용평가사의 평가모형(1~10등급)에서 6등급을 받아 은행 대출을 못 받았기 때문이다. 은행은 신용등급 5등급 이하 소비자에게는 대출을 잘 해주지 않는다. 그런데 8퍼센트는 자체 신용평가모형(A~D등급 12단계)에서 김 씨에게 네번째로 높은 B+ 등급을 줬다. 김 씨가 기존 신용평가에서 6등급이었는데도 대출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학자금 대출을 빼면 다른 채무가 없는데다 신용카드 연체도 한 적이 없다는 걸 높이 평가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내역을 점검한 결과 그가 8퍼센트에 제출한 개인정보가 맞다는 점을 확인한 것도 신뢰도 측면에서 가산점 요인이 됐다.
금융회사가 새로운 신용평가모형을 적용해 중금리 대출을 해 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카카오은행과 케이(K)뱅크의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계기로 금융권의 중금리대출(연리 10% 안팎)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P2P 업체는 물론 시중은행·지방은행·저축은행 같은 기존 금융회사도 경쟁적으로 중금리 상품을 출시하고 있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로 예상되는 인터넷전문은행 출범 전에 중금리 대출수요를 선점하기 위해서다. 8퍼센트처럼 자체 신용평가모형을 만든 곳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중은행인 농협은행은 직업·소득을 불문하고 1000만원까지 대출해주는 상품(EQ론)을 12월 중 출시한다. 광주은행은 신용등급 7등급 이상 여성 주부(1000만원 한도)를 대상으로 한 ‘주부퀵론’을 내놨다. KB저축은행·신한저축은행 같은 은행지주 계열 저축은행도 연 10% 안팎의 대출 상품 마케팅에 힘을 쏟고 있다.
20~30% 저축은행서 빌리기 부담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를 해 준 금융위원회는 은행 문턱을 넘기 힘든 신용등급 5등급 이하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중금리 대출시장이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개인신용평가사인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9월말 현재 5등급 이하 금융소비자는 1676만명으로 전체 신용평가 대상(4393만명)의 38%다. 이들 중에는 은행권에서 외면받은 뒤 저축은행·대부업체의 연 20~30%대 고금리를 썼다가 채무불이행자로 전락하는 사례도 꽤 있다. 실제 은행권은 명목상으로만 5등급 이하에 연 5~12%의 대출금리를 매겨놓고 대출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4대 시중은행(신한·KEB하나·KB국민·우리)의 대출 중 80% 가량은 4등급 이상 고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연리 5% 미만의 저금리 대출이다. 반면 저축은행 대출의 80%는 저신용자를 대상으로 한 연리 25% 이상의 고금리 대출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연리 5% 미만 은행 대출은 못 받고, 연리 20% 이상 저축은행 대출은 부담스러웠던 금융소비자의 중금리 대출 수요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중은행은 금리 낮아도 심사 깐깐
그러나 금융위 전망대로 낙관적으로만 볼 수 없다는 전망도 많다. 대상을 좀 더 보수적으로 보면 중금리대출 수요가 의외로 많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우선 신용등급 9~10등급의 저신용자(188만명)는 높은 연체율(12~37% 이상)을 감안하면 대출 승인을 받을 가능성이 적다. 은행이 돈을 떼일 위험(리스크)이 크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일반 대출이 아닌 정부의 서민금융상품 지원 대상으로 분류됐다. 이들을 빼면 중금리 대출 실수요자는 신용등급 5~8등급 1488만명으로 줄어든다. 사회생활 초년병인 20대 젊은층을 대상으로 한 대출도 쉽지 않다. 고정 소득이 생긴 지 얼마 안 돼 좋은 신용등급을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은행은 5월 모바일 전용 중금리 대출상품 ‘위비뱅크’를 출시했다가 한달만에 20대에 대해서만 대출한도를 원래(1000만원)의 절반인 500만원으로 줄였다. 대출심사 때도 신용카드 6개월 이상 거래내역을 제출하도록 했다. 직업·소득에 관계없이 대출해준다는 상품 출시 취지를 깨지 않는 선에서 신용도를 평가하려는 고육지책이었다.
결국 중금리대출 시장 선점의 관건은 저신용자와 젊은층 중 중금리대출 실수요를 발굴할 수 있는 신용평가모형을 누가 정교하게 만드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신용평가모형 구축은 기존 금융회사보다 정보통신기술(ICT)을 기반으로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사업자가 유리하다는 평가가 많다. 카카오은행은 카카오톡을 비롯한 SNS 활동내역과 카카오페이 결제, 전자상거래 지급결제 등을 신용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카카오톡 충성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겠다는 취지다. K뱅크는 빅데이터 분석과 통신비 납부내역 등을 활용해 주부·대학생처럼 기존 신용평가시스템에서 소외된 금융소비자 1000만명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신용평가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평가모형 도입은 리스크가 클 거라는 우려도 있다.
개인신용평가사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의 김정인 전무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먼저 시작한 미국에서도 SNS를 통해 얻은 정보는 아직 실험적으로만 신용평가에 반영하고 있다”며 “통신비·전기요금처럼 신뢰할만한 정보 중심으로 신용평가를 해야 연체 리스크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경 기자 uni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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