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PP 전격 타결 ◆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각료회의 엿새째인 5일 아침(현지시간) 미국 애틀랜타의 리츠칼튼 호텔에 12개 참가국 통상장관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협상 타결을 선언하기 위해서였다. 세계 최대 경제권이 탄생하는 역사적인 장면이었다. TPP 협상 최종 타결 소식을 전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언론들이 일제히 플래시를 터뜨렸다. 미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마이클 프로먼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아마리 아키라 일본 경제재생상이 각별히 굳은 악수를 나눴다.
TPP의 양대 지주는 미국과 일본이다. 교역량 세계 1위와 3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 나라 국내총생산(GDP)은 TPP 참가 12개국 중 78%를 점유한다.
당초 이틀이었던 회의 기간이 세 차례 연장을 거듭하며 닷새로 늘어나고, 밤샘 협상까지 불사했던 것은 내년 미국 대선과 일본 참의원 선거를 감안할 때 이번이 아니면 더 이상 기회가 없다는 두 나라의 절박감이 반영됐다. 미국은 의약품 독점판매 기간을 크게 양보하고, 일본은 농산물과 자동차 분야에서 한발 물러서며 타협의 계기를 만들었다.
캐나다와 뉴질랜드 등이 대립하며 마지막까지 합의가 쉽지 않아 보였던 유제품 수입 쿼터에서 극적인 타결을 이룬 것도 TPP를 성사시키겠다는 참여국 의지가 각국의 이해득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당초 물 건너간 것처럼 보였던 TPP는 5일 새벽 극적인 타결을 이뤘다.
TPP는 무역과 투자를 가로막는 관세·비관세 장벽을 없애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한 나라처럼 경제활동이 가능한 경제 블록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대일 협정을 맺는 자유무역협정(FTA)보다 광범위한 나라가 참여하고, 세계무역기구(WTO)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무역 투자 장벽 철폐에 합의한 TPP 출범으로 세계 무역 투자 환경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TPP에 참여하는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 뉴질랜드 칠레 페루 멕시코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베트남 브루나이 12개국의 GDP 규모는 28조달러, 세계 GDP의 약 38%다. 유럽연합(EU)의 18조달러를 능가할 뿐만 아니라 아시아 16개국이 포함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도 뛰어넘는다.
5년 후인 2020년이면 이 규모가 24% 더 늘어날 전망이다. TPP 참가국들의 교역 규모도 10조1800억달러에 달해 세계 교역량의 25%를 넘나든다.
TPP는 2005년 싱가포르 뉴질랜드 칠레 브루나이 등 환태평양 4개국이 다자간 무역자유화협정을 체결한 것이 시작이다. 초기에는 반향이 크지 않았으나 2010년 미국에 이어 2013년 일본이 본격 참여하면서 규모가 폭발적으로 커져 세계가 주목하기 시작했다. 협정에는 상품 거래, 원산지 규정, 무역 구제조치, 위생검역, 무역 부문 기술장벽, 서비스 부문 무역, 지식재산권, 정부 조달 및 경쟁 정책 등 자유무역협정의 거의 모든 주요 사안이 포함돼 있어 기존 FTA보다 개방도가 높은 점도 부각됐다.
현재 TPP에 참여하고 있는 나라들은 이미 여러 나라와 FTA를 체결했지만 TPP 참여로 여러 나라와 추가로 일괄 FTA를 체결하는 효과가 있다. 캐나다의 경우 TPP를 통해 7개국과 새로운 FTA를 한꺼번에 체결하는 셈이 된다. 무엇보다 양자 간 FTA 체결 부담이 큰 미국과 일본이 여러 나라와 FTA를 한꺼번에 체결하는 효과를 얻는다.
일본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으로 대표되는 아시아 국가와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지역 국가, 호주 뉴질랜드 등 태평양 국가 간에 상호 시장 진출이 수월해지는 측면도 중요한 변화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TPP는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아시아 지역과 미국을 연결하는 효과적인 고리"라고 평가한 바 있다.
또 FTA는 체결한 나라마다 개방 조건과 관세 기준이 달라서 이를 확인하고 검역하는 부담이 크지만 TPP는 적어도 12개국 사이에는 똑같은 조건을 적용하므로 수출입 절차가 훨씬 용이하다.
이에 따라 TPP가 본격 발효되면 참여국의 자동차 철강 섬유 등 제조업의 무역수지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또 누적 원산지 기준 조항에 따라 참여국 간에 중간재 수출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TPP 참여국은 TPP에 가입하지 않은 국가로부터 수입하던 중간재를 비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 TPP 참여국 내에서 수입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은 단순한 경제적인 이유를 넘어 날로 팽창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 패권을 견제할 수단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이란 핵 합의 등에 이어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던 공약을 성사시키며 임기 막바지 리더십이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국내 입지를 더욱 굳히는 양상이다.
TPP는 11월 18~19일 필리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정상들 간 추가 논의를 거쳐 연말 또는 내년 초에 각국 정상들이 서명할 예정이다. 내년 상반기 각국 의회에서 비준을 받아 내년 말까지 발효시키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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