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發 경제위기 ④ ◆
일본이 무분별하게 돈을 풀어 엔화 약세를 유도하고 신흥국 수요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는 점도 우리 기업들을 옥죄고 있다.
20여 년 전 인도네시아에 진출한 국내 산업용 기계업체 A사의 현지 법인장 김재현 씨(가명)는 요즘 하루하루 버티기가 힘들다. 미국발 양적완화 축소, 8월 중국의 위안화 절하, 인도네시아 정부의 국책사업 미진 등으로 현지 경기가 대폭 꺾인 가운데 몇 년간 계속된 엔화 약세로 일본 업체들 공세도 더욱 거세졌기 때문이다.
김씨는 "올해 달러 기준으로 전년 대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며 "다른 한국 경쟁 업체들은 30% 이상 떨어지는 곳도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일본 제품과의 가격 차이는 이미 없어졌다"며 "일본 업체들이 자존심 때문에 가격을 더 안 내리고 있지만 대규모 공공 수주가 있을 경우에는 이와 상관없이 가격을 내려 국내 기업들이 설 자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또 1년 전에 비해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돌아다니는 일본인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인도네시아 루피아화는 2012년 10월 루피아당 21원 중반대를 기록하다가 최근에는 18원 정도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 때문에 A사와 같이 국내 본사에서 물건을 사와 현지에 유통을 하는 업체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영업을 할수록 환차손이 계속 발생하고 있다. 반면 신발 등 인도네시아 현지에 생산공장을 가지고 있는 곳은 상황이 나아지는 편이다.
글로벌 경기 부진으로 인도네시아가 지난 1분기 2010년 이래 가장 낮은 1분기 성장률(4.71%)을 기록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는 점은 A사의 사정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김씨는 "최근 인도네시아 정부가 급한 마음에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말했다.
일본에 직접 수출하는 업체들은 엔화 약세로 인해 현지 사업을 포기해야 할 정도다. 매출액 200억원 정도의 차·음료 제조업체 J사는 4년 전만 해도 일본 매출이 60억원 정도 됐다. 하지만 이후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엔화 약세가 시작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2012년 초에 비해 J사 제품의 가격 경쟁력은 현재 40%가량 떨어졌고 일본 매출은 4분의 1로 줄었다.
J사 대표 박철희 씨(가명)는 "그동안 가격을 낮춘 신제품으로 일본 시장 공략을 계속해왔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매출도 줄고 이익도 줄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다른 식음료 업체나 무역회사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며 "일본 시장은 엔화 약세가 해결될 때까지는 일단 현상 유지만 하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중국 경기 둔화 직격탄을 맞고 있는 원자재 수출국 브라질과 다른 신흥국 지역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강민주 KOTRA 상파울루무역관 과장은 "브라질과 같이 1차 산업 중심의 경제체계에서는 국제 원자재 가격 변동에 따라 경기순환이 주기적으로 일어난다"며 "일단은 회복 사이클을 기다리는 '버티기 작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인 휴대폰 부품사 M사 대표는 "인도 등에 올해 새롭게 진출했지만 판매가 여의치 않다"며 "저가 휴대폰 부품 중심으로 진출 전략을 다시 짜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이어 "삼성이나 LG의 고가 스마트폰 부품을 대량으로 납품하는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노영우 차장 / 박준형 기자 / 전범주 기자 / 정석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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