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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July 21, 2017

"목에 빨대 10개가 꽂혀 있어요" '29만9000원 여행'에 담긴 노동착취

[인터뷰-상] 최초 '해외 한인가이드 노조' 결성, 박인규·전중길씨
[오마이뉴스 글:소중한, 편집:박순옥]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노조 결성 전 과도한 업무로 인해 병원 신세를 졌을 당시의 사진.
ⓒ 박인규 제공
메꾸다 : 부족하거나 모자라는 것을 채우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이 단어에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패키지 해외여행'에서 만날 수 있는 한인 가이드가 그들이다. 우리가 '왜 이렇게 싸?'라고 생각하며 무심코 선택한 '29만 9000원 초특가 상품'은 한인 가이드의 '메꾸기'가 있기에 가능한 상황이다. 그들은 "빨대 10개가 목에 꽂혀 피 빨리는 기분"이라고 했다.
"그러면 안 되지만, 패키지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 손님이 돈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 17일 서울에서 만난 태국 현지 한인 가이드 박인규·전중길씨는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털어놨다.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우리도 손님들과 정말 즐거운 여행을 보내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놈의 메꾸기 때문에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라고 토로했다.
도대체 메꾸기가 뭐길래 '손님=돈'이란 공식이 이들의 머리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여행사=비행기 좌석판매 대행업체"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전중길 사무처장이 19일 인천공항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 소중한
태국의 경우, 비수기 저가 상품 가격이 25만 원대까지 책정된다. 이는 하나투어, 모두투어, 노랑풍선, 인터파크 등 한국의 여행사들이 정하는 가격이다. 하지만 이 25만 원에는 가이드 임금은 물론 숙박·식사 등 이른바 '지상비'라고 불리는 현지 비용이 전혀 포함돼 있지 않다. 그 25만 원은 딱 왕복 비행기 값일 뿐이다.
"한국의 여행사는 여행사가 아닙니다. 정확히 말하면 비행기 좌석판매 대행업체죠. 비행기 대부분의 좌석을 점유한 뒤, 성수기·비성수기 여부 등을 고려해 가격을 책정합니다. 그리고 손님을 태국으로 보내죠. 그러면 끝입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메꾸기, 무료봉사가 시작됩니다."
두 사람의 말을 종합하면 한국에서 손님을 모집하는 여행사는 '갑'의 위치에 서 있고, 그 손님을 받는 태국 현지 여행사(한인 가이드들은 이를 '랜드사'라고 불렀다)는 '을'의 위치에 놓여 있다. 그리고 랜드사를 통해 일을 받는 한인 가이드들은 '병'의 위치에 몰릴 수밖에 없다.
지상비가 없는 '제로투어(zero tour)'에서 랜드사와 한인 가이드들이 수익을 내는 방법은 쇼핑, 그리고 옵션으로 불리는 선택관광뿐이다. 미리 연결된 쇼핑센터와 관광지에서 커미션(수수료)이 나오면 이 돈으로 메꾸기가 진행된다.
"대개 손님 1명당 30만 원의 구멍이 생깁니다. 평균 25명이 한 팀이니까, 한 팀을 받으면 대략 750만원(30만 원×25명)을 메꿔야 합니다. 이윤이 나는 경우가 드물죠. 열 팀 정도를 받으면 대략 2, 3팀 정도 이윤이 난다고 보면 됩니다. 그 이윤은 가이드와 랜드사가 5:5로 나눠 갖습니다."
성수기가 되면 같은 상품이어도 90만 원까지 가격이 오른다. 그렇다고 해서 메꾸기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메꿔야 할 금액은 25만 원짜리 상품이든, 90만 원짜리 상품이든 똑같다. 성수기라 비행기값이 오르기 때문에 상품 가격이 올랐을 뿐, 지상비는 상품 가격에 한 푼도 포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모든 상품에 지상비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 지상비가 포함된 상품이 있지만, 숙박·식사의 질이 높아야 하기 때문에 메꾸기를 해야 하는 건 매한가지다. 더욱이 이러한 상품의 경우 '노(no) 옵션, 노 쇼핑'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메꾸기를 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개처럼 쇼핑센터로 끌고 다닌다? 억울합니다"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왼쪽)과 전중길 사무처장(가운데)이 지난 17일 오전 한국노총에서 문군현 한국노총 부위원장과 면담을 진행하고 있다. 박 본부장과 전 사무처장을 비롯한 태국 한인가이드 248명은 지난 달 30일 태국 현지에서 노조를 결성한 뒤 지난 7일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 소중한
어쨌든 지상비가 없는 상품이 주를 이루는 구조 속에서 한인 가이드는 오해의 중심에 서기도 한다. "쇼핑 시키고, 쓸데없는 관광지에 보내서 고국 여행객들 등쳐 먹는다"와 같은 시선이 그것이다.
"누군가 저에게 '가이드가 손님을 개처럼 끌고 다닌다'라고 말하더군요. 우리는 그 상품에 적힌 대로만 움직입니다. 쇼핑 5회짜리 상품이면 딱 5회만 진행합니다. 더도 덜도 하지 않아요. 만약 5회 쇼핑짜리 상품인데 4회만 진행하면 한 군데 안 간 곳에서 발생한 손해는 고스란히 가이드가 떠안게 돼요. 결국 한국 여행사가 비행기 좌석값밖에 안 되는 비정상적인 상품을 판매해 태국에 내려 보내는 구조가 잘못된 거죠. 저희 가이드는 억울합니다."
이들은 메꾸기의 규모가 더 커지는 원인으로 한국 여행사의 '킵백(keep back)'을 꼽기도 했다. 두 사람이 설명하는 킵백은 가격 부풀리기를 통해 한국 여행사가 이익을 취하는 구조였다. 이들은 킵백을 거론하며 "한국 여행사가 한인 가이드들의 목에 빨대를 꽂아놓고 피를 빨아먹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유적지 티켓 가격이 1만 원이라고 가정해 봅시다. 근데 그 유적지에 가면 바우처라는 것과 함께 총 1만5000원에 티켓을 사야 합니다. 그럼 그 5000원이 한국 여행사로 가는 거예요. 이게 유적지뿐만 아니라 호텔, 식당, 심지어 과자까지 현지에서 하는 모든 것에 킵백이 적용돼요. 빨대 한 개도 아니고 열 개를 목에 꽂고 있는 심정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한국 여행사에서 현지에 식당을 만들어놓고, 그곳으로만 가게 지시한다"라며 "일반 식당의 도시락이 4500원인데, 한국 여행사가 지정한 식당은 7000원이다. 그런데도 (지정 식당의 품질이) 더 떨어진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인데도 한국 여행사는 지정된 식당에 가지 않으면 '팀(손님)을 주지 않겠다'고 우리를 협박한다"라고 덧붙였다.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과 전중길 사무처장은 지난 17일 <오마이뉴스>를 만나 "한국 여행사에서 현지에 식당을 만들어놓고, 그곳으로만 가게 지시한다"라며 "일반식당의 도시락이 4500원(사진 위쪽)인데, 한국 여행사가 지정한 식당은 7000원(사진 아래쪽)이다. 그런데도 (지정 식당의 품질이) 더 질이 떨어진다"라고 강조했다.
ⓒ 박인규·전중길 제공
앞서 소개했듯, 여행 상품에 한인 가이드들의 임금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그들이 고정적인 월급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책정돼 있는 '가이드 팁(약 40달러)'도 이름만 가이드 팁이지 그들의 손에 들어오지 못하고 메꾸기를 위해 사용된다. 메꾸기를 못한 데 따른 손해는 주로 랜드사가 떠안게 되지만, 한인 가이드들 역시 고초를 겪을 수밖에 없다.
"태국에서 물 한 병에 대략 500원 정도입니다. 손님 25명에게 버스에서 내릴 때마다 물을 사서 드려야 해요. 그리고 때에 따라서 과일도 사서 서비스로 드리고요. 나이 좀 드신 분들은 식당에 가면 '가이드, 밥 먹는데 소주 한 잔 안 줘?'라는 요청도 수시로 들어옵니다. 태국에선 한국 소주가 1만 원이 넘어요.
아무튼 그렇게 서비스하면 대략 40만 원 정도 씁니다. 이렇게 서비스하는 이유는 가이드 팁이란 이름의 40달러 때문이죠. 또 그래야 손님들 기분도 좋아지고, 쇼핑갈 때 조금이라도 할 말이 있고요. 근데 메꾸기를 하지 못하면 10원도 못 벌고 끝나는 거예요. 내 돈 40만원 쓰고, 한 푼도 벌지 못한 채 집에 들어가는 길…. 눈물 뚝뚝 떨어집니다."
"노조 조끼 입은 이유, 10년 후에도 똑같으면 안 되니까..."
각각 20년, 21년 경력을 갖고 있는 박씨와 전씨는 "1년에 2000만~2500만 원 정도를 번다"라고 말했다. 박씨는 "담뱃값 외엔 돈 들어갈 곳이 없다. 다른 취미 생활도 없이 20년 동안 일만 했는데 지금 16평 월세에서 아내, 두 아이와 살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태국 물가가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한 5년 전부터는 사정이 더욱 안 좋아졌다. 그런 와중에도 두 사람은 "저희는 경력이 있는 부장급이어서 그나마 벌지, 과장·대리·사원들은 말도 안 되는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원은 사실상 수입이 없다고 봐도 된다"라고 설명했다.
"아버지가 한국인인 아이가 급식을 하지 않고 친구들에게 조금씩 얻어먹는 걸 태국인 교사가 봤나 봐요. 그래서 가정방문을 해봤더니 냉장고 안에 있는 게 고추장 하나가 전부였다는 거예요. 그 아버지가 한인 가이드였죠."
두 사람은 "한 달 동안 쉬는 날이 거의 없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한 달 평균 4~5개 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다. 성수기 때는 6~7개 팀을 상대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동일 팀이라고 하더라도 손님 별로 태국 입국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하루 종일 수차례 공항을 오가다 보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최근 박씨는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이틀 동안 3~4시간 자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버스에서 마이크를 잡으면 머리가 멍해요. 코피도 쏟아진다니까요."
▲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의 박인규 본부장이 태국에 두고 온 딸의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 소중한
박씨와 전씨가 일터를 버리고 한국으로 온 까닭은 노조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지난달 30일 태국 현지에서 노조를 결성한 두 사람은 지난 1일 입국 후 7일 한국노총에 가입했다. 두 사람과 함께 태국 한인 가이드 248명이 '한국노총 전국공공노동조합연맹 중부지역공공산업노조 한국통역가이드연합본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해외 한인 가이드들이 노조를 결성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씨와 전씨는 각각 본부장과 사무처장을 맡았고, 현재 인천공항과 국회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한국 여행사를 향해 ▲ 메꾸기 금액 축소 ▲ 근로기준법에 의거한 노동시간 보장 및 초과근무수당 인정 ▲ 가이드 팁 정상화 ▲ 노조 가입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고 있다. 두 사람은 "베트남, 캄보디아, 필리핀, 호주, 유럽 등에서도 노조 결성의 움직임이 보이고 있다"라고 전했다.
"새롭게 일을 하러 오는 후배들에게 제가 이야기합니다. '이 일 하지 말라'고요. 그래도 하겠다면 '그래, 몇 개월만 해봐라'라고 말합니다. 몇 개월이요? 딱 두 팀 받으면 일 그만두고 그냥 떠납니다. 그들이 떠나면서 '선배님, 편의점 알바가 백 배 낫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런 상황이에요. 제가 노조 조끼를 입은 이유는 하나입니다. 제 나이가 이제 오십이에요. 제 인생은 그렇다 치고 외국에 나와서 고생하는 가이드 동생들, 이들의 미래가 제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5년 후, 10년 후에도 똑같으면 안 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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