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이란으로부터 대규모 선박 수주가 가능할 것이라 기대를 모았던 국내 조선업계가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금방이라도 ‘수주 대박’이 날 것처럼 관심이 집중됐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크게 기대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는 판단이 나온 것이다.
‘수주 절벽’ 상황이지만, 무턱대고 출혈 저가 입찰 경쟁에 뛰어들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조선 빅3의 영업적자 폭은 8조5000억원에 이른다. 구조조정과 재무구조 개선 등이 올해 메인 이슈가 되면서 위험도가 높은 이란발(發) 선박 수주에 대한 관심도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21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이란 선주들은 대부분 국내 조선사들과의 협상에서 대규모 선박금융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쉽게 말하면 지금은 돈이 없으니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방안까지 조선사들이 마련해 선박 수주를 해가라는 얘기다. 조선사들이 쉽게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힘든 이유다.
국내 조선사들은 최근 저유가 폭탄 때문에 리그(시추설비 업체) 업체들의 부도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 보유 자금이 없는 이란 선주사들과 계약을 했다가 2~3년 후 선박 인도 대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이라 조선사들이 주저하고 있는 셈이다.
글로벌 수주 경쟁이 심화된 것도 ‘조선 빅3’가 수주를 주저하는 원인 중 하나다. 가장 강하게 수주 드라이브를 거는 측은 중국 측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해당 국가의 정부와 직접 협상한다. ‘광산 채굴권을 중국에 주면, 선박(2000억원 규모)을 무료로 인도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을 정부에 건넨다. 한국과는 스케일이 다른 협상 전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조선사들의 추격도 거세다. 영국 조선·해양조사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수주잔량 기준으로 삼성중공업은 일본 이마바리 조선에 3위 자리를 내줬다. 이는 엔저 효과로 선박 건조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해외 수주 물량이 증가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때 국내 ‘조선 빅3’가 전 세계 수주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했던 때와는 확연히 판도가 바뀐 것이다.
특히 올해는 수주 절벽까지 겹쳤다. 올들어 1~2월 사이 전세계 선박발주량은 104만CGT(33척)에 불과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528만CGT(25척)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급감한 수치다. 발주량이 줄어들면서 발주되는 물량에 대한 입찰 경쟁은 더 치열해지고, 이 때문에 수주를 위해선 출혈 경쟁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되는 상황이다.
이란의 선박 발주업체의 지불 능력에 대한 의구심과 시장 축소에 따른 출혈 경쟁 가능성은 이란발(發) 수주에 대해 조선사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수십년 동안 이어진 경제제재 탓에 당장 돈이 없는 이란 업체들이 많다. 또 발주 물량 중 다수도 이란 조선사가 우선권을 가진다. 한국 업체들이 조인트 형식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협상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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