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 MWC에서 엿본 스마트폰 시장의 미래 전문가들 “모든 하드웨어가 물리적 한계 도달”
“스마트폰 스펙 경쟁은 이제 끝나간다” vs “아니다. 아직 하드웨어 혁신이 필요한 부분이 많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2월24~27일(현지시각) 열린 세계 최대의 모바일 전시회 ‘2014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의 물밑을 흐르는 화두는 바로 하드웨어의 발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느냐였다. 현재 나오는 스마트폰의 하드웨어 ‘스펙’은 1년 전에 비해서도 큰 차이가 없는, 정체 상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의 두뇌인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퀄컴의 스냅드래곤 800에서 별다른 발전이 없다. 갤럭시S4 LTE-A에 탑재됐던 2.2GHz 쿼드코어인 스냅드래곤 800은 조금 더 성능이 개량돼 2.5GHz인 805까지 좋아지긴 했지만 싱글코어(탑재된 프로세서 수가 1개)에서 더블코어(2개), 쿼드코어(4개)로 숨가쁘게 발전하던 것에 비하면 그 속도는 현저히 줄어들었다.
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2012년 말 최초의 풀HD 스마트폰인 대만 HTC의 버터플라이가 출현한 이후 그보다 더 촘촘한 화소 수의 스마트폰은 아직도 등장하지 못했다. 자고 일어나면 하드웨어 신기술이 등장하던 2~3년 전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그사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 1위인 삼성과 중국의 신출내기 스마트폰 업체가 하드웨어 스펙만으로는 차별화를 두기 힘들 정도가 됐다.
삼성 최신폰, ‘듣보잡’ 중국산과 사양차 없어
삼성의 기존 최고급 스마트폰인 갤럭시S4와 중국의 신흥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의 MI3의 사양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예상보다 훨씬 작은 것에 깜짝 놀랄 것이다. 둘 다 스냅드래곤 800과 풀HD 화면에 2GB 램을 쓰고 있다. 스펙은 비슷하지만 갤럭시S4의 출고가가 100만원에 육박하는 반면 MI3의 판매 가격은 327달러(약 35만원)에 불과하다. 가격이 절반에도 못 미친다. 올해 MWC에 등장한 중국제 스마트폰들의 스펙도 모두 비슷비슷했다. 삼성이 ‘엑시노스’라는 뛰어난 자체 생산 AP와 ‘슈퍼 아몰레드’라는 하드웨어 스펙으로 시장을 주도하던 시기는 이미 지나가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상황에 대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분석은 확연히 달랐다. 삼성전자의 신종균 사장은 “하드웨어 경쟁이 끝났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그는 2월23일(현지시각)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드웨어도 제품 경쟁력의 요소고 지난날 돌이켜봐도 소프트웨어 발전이 있었으나 하드웨어도 혁신이 많았다. 내일도 하드웨어의 혁신이 있다(삼성은 다음날 갤럭시S5를 공개했다). 하드웨어 스펙 경쟁이 끝났다는 말은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카메라, 배터리, 디스플레이, 소리’ 등을 하드웨어 혁신이 여전히 필요한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LG전자의 박종석 사장은 이제 하드웨어 경쟁은 끝났다고 분석했다. 그는 “굉장히 복잡한 게임을 하는 경우에나 하드웨어 차별화가 의미가 있다. 프리미엄 시장에서 (하드웨어로) 기술을 선도하는 거리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분석했다. 하드웨어의 발전이 스마트폰 사용 경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지났다는 뜻이다. 그는 “차별화를 위한 차별화, 혁신을 위한 혁신 말고 고객이 정말로 필요로 하는 감춰진 요구사항을 찾아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이 결국 스마트폰 시장의 승부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물론 두 회사의 현재 상황이 워낙 다른 만큼 상황 분석에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삼성은 세계 1위 업체로 시장의 판도를 계속 새로 써나가야 하는 처지다. 반면 삼성과 애플에 이어 세계 3위(매출액 기준)를 지키기에 급급한 LG는 이제 모두 고만고만한 상황이라고 강조하는 게 훨씬 유리한 처지다.
갤럭시S5 성능 혁신도 ‘깨알’ 수준
그럼 삼성이 2월24일 ‘언팩’ 행사를 통해 공개한 갤럭시S5에 과연 하드웨어의 혁신이 있었을까. 뚜껑을 열어보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갤럭시S5는 카메라 성능, 지문인식, 심박센서 등을 추가하며 ‘깨알같이’ 사용성을 강화했지만 하드웨어 부문에서 엄청난 수준의 진보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무엇보다 화면의 화소 수가 높아지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하게 받아들여진다. 지난해 말 삼성디스플레이가 5.2인치 QHD 아몰레드 디스플레이의 양산을 시작했다고 알려졌고, 이것이 갤럭시S5에 쓰일 거라는 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갤럭시S5는 갤럭시S4와 같은 풀HD 화면을 사용하는 데 그쳤다. AP가 무엇인지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냅드래곤 800의 개량형과 엑시노스 빅리틀 옥타코어가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역시 갤럭시S4에 비해 크게 진일보한 면이 없는 셈이다. 다만 초점을 훨씬 빨리 잡을 수 있는 카메라, 운동효과를 측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심박센서, 잠금화면을 푸는 것은 물론 페이팔 결제까지 가능한 지문인식 기능, 방수·방진 기능 등을 채택해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아쉬워하던 기능을 대거 채택한 것이 차별점이었다.
물론 하드웨어 혁신은 필요하다. 한번 충전하면 일주일 정도 가는 배터리, 눈이 쨍할 정도로 세밀한 화면, 어떤 무거운 프로그램도 쌩쌩 돌리는 AP를 그 누가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게 가능한가는 또 다른 문제다. 왜 하드웨어의 발전은 점차 늦어지고 있을까.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한 정보기술(IT) 업계 전문가는 “모든 하드웨어가 현재 물리적 한계에 도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디스플레이의 경우 화소 수가 늘어나면 필연적으로 화면 밝기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약점이 있다. 작은 전구는 그만큼 빛이 약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된다. 결국 작으면서도 강한 빛을 내게 할 수밖에 없는데, 이는 디스플레이의 수명을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삼성 아몰레드의 경우 번인(스마트폰 화면에 이미지 잔상이나 얼룩이 남아 있는 현상)이 빨리 일어날 수 있다는 약점을 가지게 된다. AP 또한 20나노급 이하로 갈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이 아쉬워하는 배터리도 마찬가지다. 현재 가장 효율이 높은 리튬폴리머 배터리로는 크기를 키우는 것 외에 다른 방식으로 용량을 키울 방법이 거의 없다. 완전히 새로운 물질이나 공정 방식을 찾기 전에는 하드웨어의 급격한 발전은 상당 기간 요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디자인·보조기능 개선에 주력할 듯
결국 스마트폰 경쟁의 핵심은 디자인, 사용자경험(UX), 보조기능 등으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다. LG가 ‘노크코드’(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두드려 화면을 켜고 암호를 해제할 수 있는 기능) 사용자경험을 그토록 강조하고, 삼성이 건강, 방수, 지문인식을 통한 보안 강화 등으로 부가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그 단적인 예다. 올해 MWC 어워즈에서 삼성이 단 하나의 상도 받지 못하고 대만 HTC의 ‘원’(one)이 최고 스마트폰상, LG가 가장 혁신적인 스마트폰 제조사로 선정된 것은 스마트폰 제조사 간의 경쟁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장면이다.
No comments:
Post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