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메신저 시장이 2주 동안 급변했다. 몸집 큰 기업 위주로 판이 바뀌었다. 이 시장에서 몸집 큰 서비스 2개가 2주 사이에 거대 IT 기업에 팔렸다. 일본의 아마존 라쿠텐은 2월14일 ‘바이버’를 인수했다고 발표했고, 6일 뒤엔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모바일 메신저는 페이스북과 라쿠텐, 텐센트, 네이버 등 거대 기업이 겨루는 장이 됐다.
이들 기업이 올 한해 모바일 메신저 시장에 그릴 판을 미리 그려보자. 힌트는 각 기업이 낸 자료와 발언에서 얻을 수 있었다.
페이스북-왓츠앱, 인터넷 안 쓰는 인구 ⅔를 사용자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의 원조, 왓츠앱이 페이스북 품에 안겼다.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현금 40억달러, 주식 120억달러, 30억달러에 인수한다고 2월19일 밝혔다.
왓츠앱은 2009년 아이폰용 응용프로그램(앱)으로 출발했다. 아이폰의 기본 문자 서비스만큼 간편하고 단순했다. 메시지를 보내는 방법이 문자 보내는 방법과 꼭 닮았다. 5년 뒤 글로벌 서비스로 성장했고, 한달 활성사용자 4억5천면명을 모았다. 가입자 수가 아니다.
왓츠앱의 서비스 철학은 2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유료와 광고 없는 서비스다. 왓츠앱은 등장 이후 줄곧 유료 정책을 고수했다. 종종 무료 이벤트를 벌였지만, 유료 판매가 기본이었다. 2013년 7월 무료 앱으로 전환했지만, 그 대신 0,99달러씩 연간 사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얀 코움 왓츠앱 CEO는 “광고가 삶에 끼어들면 우리는 판매되는 제품이 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는 “광고가 보고 싶어 다음 날 아침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다”라면서 “다음날 나누게 될 대화를 기대하며, 또는 오늘 대화하지 못한 누군가를 아쉬워하며 잠드는 사람은 많을 것”이라고 왓츠앱이 광고를 팔지 않는 까닭을 설명했다.
페이스북은 왓츠앱을 인수한 뒤에도 이 2가지 서비스 철학은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한국 홍보 담당자는 “인스타그램이 독립 서비스로 운영하는 것처럼 왓츠앱도 마찬가지”라고 설명을 보탰다. 사용자에게 연간 사용료를 받는 방식에 변화가 없다는 얘기다.
마크 주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광고가 메시징 시스템으로 돈을 버는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왓츠앱 인수 관련한 전화 회의에서 2월20일 밝혔다. 같은 회의에서 얀 코움은 아직 인터넷을 쓰지 않는 50억 인구가 왓츠앱의 잠재 고객이라고 말했다.
얀 코움의 말에서 페이스북과 왓츠앱이 바라보는 시장의 규모를 알 수 있다. 두 회사는 지금 스마트폰을 쓰지 않는 사람도 사용자로 끌어안으려는 꿈을 꾸고 있다. 왓츠앱으로 당장 광고 수익을 만드는 게 큰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터무니없는 예상은 아니다. 페이스북은 세계 인구 3분의2가 인터넷을 쓰지 않는다며, 이들이 인터넷을 쓰게 할 방법을 모색하는 협의체 ‘인터넷닷오아르지’를 만들었다. 삼성전자와 노키아, 에릭슨, 퀄컴 등이 참여한다.
바이버는 라쿠텐의 소셜 플랫폼
왓츠앱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모바일 메신저가 있다. 바이버다. 플랫폼이 되길 거부한 왓츠앱과 달리 바이버는 플랫폼의 길로 간다.
라쿠텐은 바이버를 인수한다고 2014년 2월 밝히면서, 바이버가 라쿠텐의 소셜 플랫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더 자세한 얘기는 라쿠텐이 2월14일 공개한 자료에서 찾아보자. 라쿠텐은 바이버가 전자상거래와 게임, 디지털 콘텐츠의 채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쿠텐이 벌인 사업은 꽤 다양하다. 일본과 해외 사용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쇼핑몰, 전자책 서점 ‘코보’, 동영상 서비스 ‘비키’가 있다. 이들 서비스의 사용자 수를 합하면 1억9600만명에 달한다. 이를 ‘라쿠텐 그룹 멤버십’이라고 부른다.
바이버를 인수하면서 라쿠텐 그룹 멤버십의 회원 수는 2배 이상으로 껑충 뛰었다. 이제 라쿠텐 그룹 멤버십은 4억9600만명이다. 라쿠텐이 유통하는 상품, 게임, 디지털 콘텐츠의 잠재 소비자 규모다.
라쿠텐은 바이버의 밑그림을 아직 다 공개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라쿠텐이 바이버를 카카오톡이나 라인과 비슷한 모습으로 만들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카카오톡과 라인은 자체 개발 혹은 외부 앱과 연동하여 게임과 전자상거래, 콘텐츠, 모바일 앱을 유통한다. 이 방법으로 카카오는 2012년 462억원, 라인은 2013년 4542억원 매출을 올렸다.
▲라쿠텐은 바이버를 인수하면서 라쿠텐과 코보, 비키 등 라쿠텐의 서비스 사용자와 가입자 수를 1억9600만명에서 4억9600만명으로 단숨에 끌어올렸다.
텐센트 어깨 위 위챗, 카톡 벤치마킹하고 미국으로
실리콘밸리가 왓츠앱을 배출했다면 중국에는 위챗이 있다. 위챗은 ‘QQ메신저’로 유명한 텐센트가 만들었다.
위챗의 힘은 중국 인구에서 나온다. 2013년 10월 기준 위챗의 가입자 수는 6억명에 달한다. 6명 중 5명이 중화권에서 나왔다는 보도가 있을 정도다. 카카오가 한국 모바일 시장을 쥐었듯, 위챗은 중국어권 시장을 사로잡은 셈이다.
위챗이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지 궁금하다면 카카오톡을 참고하자. 텐센트가 바로 카카오의 투자사이기 때문이다. 텐센트는 2012년 720억원을 카카오에 투자했다. 투자를 단행한 이후 텐센트는 위챗에서 스티커를 팔고, 위챗을 모바일 게임과 앱 유통 채널로 만들었다.
텐센트는 위챗의 가입자를 6억명에서 더 끌어올릴 계획이다. 올 초 미국 사용자 끌어안기에 나선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위챗은 2월 구글 계정을 등록한 사용자에게 미국 식당 예약 사이트의 쿠폰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2013년 텐센트는 위챗 마케팅 비용으로 2153억원을 썼다. 올해 이 비용을 쉽게 줄일 수 없을 전망이다.
라인의 2014년 목표 ‘가입자 5억명’, 가능할까
왓츠앱과 바이버 매각 소식에 긴장하는 곳이 있다. 라인을 운영하는 네이버다.
네이버는 2014년, 라인 가입자 수를 5억명으로 늘릴 계획을 세웠다. 더불어 마케팅 비용을 아끼지 않으려는 마음을 먹었다. 2013년 라인 마케팅 비용이 1천억원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네이버는 올해 ‘전년과 비슷한 수준’으로 집행할 계획을 2월 실적 발표에서 밝혔다.
하지만 네이버는 이 계획을 수정해야 할지 모른다.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나오고 나서 네이버는 “모바일 서비스에서 라인과 같은 메신저가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네이버의 말대로 모바일 메신저는 모바일 시장에서 중요한 승부수가 됐다. 라인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기 전에 네이버보다 큰 기업과 경쟁하게 됐다.
라인이 확실하게 ‘내 시장’이라고 삼을 곳은 일본과 태국, 대만 3곳이다. 이곳에서 각각 가입자 5천만, 2200만, 1700만명을 모았고 이중 80%는 한달 활성사용자다.
라인 가입자 수는 총 3억5천만명이다. 가입자 수만 6억명인 위챗에 뒤처지는 규모다. 왓츠앱의 한 달 활성사용자 수는 라인의 가입자 수보다 29% 많은 4억5천만명이다.
카카오톡, 거대 기업 마케팅 공세 이겨낼까
카카오만큼 지금 판세에 당황할 곳이 또 있을까. 카카오는 블로터닷넷과 전화 통화에서 “우리는 큰 회사가 메신저 시장에 관심을 둘 계기를 만들었다”라면서 “앱이 아니라 플랫폼을 만들었고, 수익 모델을 만들었다”라고 밝혔다. 페이스북이 왓츠앱을 인수했다는 소식이 나온 이튿날이었다. 카카오는 “우리는 퍼스트 무버(선발주자)”라고 말했다. 자기의 성공 모델을 네이버뿐 아니라 해외의 기업까지 따라 하는 모습을 가리킨 얘기였다.
카카오는 왓츠앱이 연 모바일 메신저에 처음으로 광고가 아닌 수익모델을 붙였다. 바로 게임이다. 2012년 7월 ‘카카오 게임하기’라는 플랫폼을 만들었다. 게임사에 카카오톡 사용자의 친구 관계와 카카오톡 메시지 보내기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API와 소프트웨어 개발도구(SDK)를 제공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협력한 게임사 중에서 상장한 곳이 나왔다. 스티커 판매의 효과도 좋았다. 이석우 카카오 공동대표는 ‘스티커 매출이 하루 1억원’이라는 발언을 했다. 라인과 위챗, 탱고, 패스, 페이스북, 구글 행아웃 등이 스티커를 유무료로 제공하는 데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인과 위챗, 탱고가 모바일 게임 유통을 시작한 것도 카카오 게임하기의 성과가 나온 뒤다.
그렇지만 카카오가 앞으로 퍼스트 무버로서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미지수다. 카카오는 한국을 넘어서 해외 시장을 노리지만, 아시아는 라인과 위챗이 잡았고, 왓츠앱은 세계에서 사용자를 고루 확보했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을 호시탐탐 노리는 페이스북의 메신저와 구글 행아웃과 구글플러스도 있다. 이들과 겨루기에 카카오는 규모가 작다.
다음 마이피플, 불투명한 해외 진출
모바일 메신저 시장이 거대 기업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마이피플의 앞날은 더욱 불투명해졌다.
다음커뮤니케이션은 2013년 마이피플을 해외 시장에 내놓을 계획을 밝혔다. 국내 사용자에게만 서비스한다는 방침을 바꿔 서비스 언어를 20개로 늘렸다. 2014년 2월 실적발표에서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시장에 발을 내딛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헌데 마이피플은 카카오톡과 다르게 중심이 될 시장을 만들지 못했다. 카카오톡은 한국에서 거둔 성공 사례를 해외로 확대한다. 반면 마이피플은 한국용 메신저로 출발했지만, 한국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가입자 수는 정체 상태다. 2013년 9월 2800만 가입자가 있다고 밝혔는데 5개월 동안 변화가 없었다. 2014년 2월 가입자 수를 문의했을 때에도 다음은 “2800만”이라고 대답했다.
다음은 동남아시아를 해외 진출의 중심으로 삼겠다고 밝혔지만, 그중 어느 국가를 먼저 공략할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 이 두 가지 상황이 마이피플의 미래를 점치기 어렵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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